💬사역 스토리

사역지 인터뷰 두 번째 시리즈 - '다윗의물맷돌선교회' 김주한 목사님🤝

관리자
2025-10-27
조회수 362

안녕하세요!

저는 KAM선교회가 후원하는 사역지의 소식을 전해드릴 KAM 스토리 메신저, 임효주 간사입니다😁 

앞으로 현장의 생생하고 따뜻한 이야기들과 함께, 우리가 기도로 동역해야 할 소식들을 꼼꼼히 전해드리겠습니다!

글을 다 읽으신 후, 응원의 댓글도 남겨주세요 😆 

성도님들의 댓글 하나하나가 사역 현장에 계신 분들과 저희 모두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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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_

이번 콘텐츠는 ‘선교지 인터뷰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로, 통일을 꿈꾸며 오늘도 한 영혼을 붙드는 ‘다윗의물맷돌선교회’ 김주한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작은 곳에서 기도·말씀·회복으로 시작된 사역.

탈북민을 돕는 일도, 한국교회가 서로 다른 문화를 품는 일도 결국 신앙의 부흥에서 비롯된다는 믿음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함께 동역하던 스탭들이 떠나가고, 때로는 혹독한 코로나 시절을 보내며 선교회의 문을 닫을까 망설인 밤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보내 도움의 손길을 주시며, 기도의 자리를 지키게 하셨습니다 🙏🏻

최근엔 찬양 인도자와 반주자까지 붙여 주셔서, 매주 예배가 더 깊어졌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이끄시는 만큼 사역 하시는 ‘다윗의물맷돌선교회’의 김주한 목사님의 이야기를 지금 들어보세요!


Q. KAM 성도분들께 인사와 함께, 지금 어떤 사역을 하고 계신지 간단히 말씀해주시겠어요?


김주한 목사  예, 우리 KAM선교회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개인적으로도 오랜 인연을 이어오며, 다윗의물맷돌선교회가 가장 어려운 시기를 지날 때마다 큰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늘 중보해 주셔서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지금 저희 ‘다윗의물맷돌선교회’가 주력으로 삼고 있는 사역은 ‘탈북민 영성 운동’입니다. 탈북민을 품고 통일 시대를 준비한다는 것은 결코 보통의 헌신으로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저희는 “탈북민들이 한국에 정착하고, 한국교회 성도들이 그들의 삶과 문화를 받아들이는 일은 결국 신앙의 부흥이 일어나야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탈북민의 정착도, 남한 성도들의 이해와 포용도 결국 신앙의 문제이자 부흥의 문제라는 것이죠.

그래서 교회를 세우는 대신, 기도와 말씀, 그리고 회복에 집중하는 선교회 형태의 사역을 택했고,
현재는 영성집회, 말씀학교, 찾아가는 양육 사역 등을 통해 한국교회와 탈북민이 함께 영적으로 깨어나도록 돕고 있습니다.


Q. 북한에서 남한으로 오시기 까지 쉽지 않으신 길을 걸어 오셨는데 하나님께서 이 사역을 위해 특별히 준비시키셨다고 느끼신 순간이 있으실까요?


김주한 목사  저는 북한에서 군 복무 중 장애를 입어 의가사 제대를 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는 마침 북한의 경제난이 극심하던 시기였어요. 300만 명이 굶어 죽었다는 말이 돌던 때였죠. 우리 집도 버티지 못해 결국 중국으로 탈북 했습니다. 초창기엔 떠돌며 살았고, 병이 도져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습니다.

그때 교회로 인도함을 받아서 걸렸던 병이 치유 받게 되었어요. 한국에서 오신 선교사님들을 통해 신앙교육을 받으면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환상으로 비전을 보여주셨는데, 고향 집 앞의 포도나무가 온 한반도를 덮고 있었어요. 포도송이 하나를 안으려 해도 양팔이 닿지 않을 만큼 크고 풍성한 모습이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북한의 영혼들을 버리지 않으셨구나. 이들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이 있구나.” 확신했고 그 비전을 따라, 제 삶을 그 길에 드리기로 결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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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만든 자료화면>

성경을 읽다 예레미야애가 말씀을 보는데, 북한의 현실이 그대로 떠올랐어요. 하나님을 떠난 민족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절실히 느꼈죠. 그때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이게 하나님을 떠난 저주의 현실이구나.” 그날 이후 제 사명의 이유가 분명해졌습니다. 한 때는 직접 북한에 들어가려 했지만, 기도 끝에 통일의 때를 준비하기로 하고 한국으로 와서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효주  중국에서는 얼마 동안 계셨고, 한국엔 어떤 경로로 오셨어요?


김주한 목사  스물넷에 탈북해서 중국에서 8년 정도 지냈습니다. 그땐 브로커도 없던 시절이라, 지도 한 장 들고 직접 길을 찾아야 했어요. 이후 한국에 먼저 온 탈북자 친구들과 연결되어 브로커를 통해 베트남–캄보디아–태국을 거쳐 들어왔습니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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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화면>


Q. 처음 그려왔던 비전과 현장에서 마주한 현실 사이에 간극이 있었나요?


김주한 목사  네, 많았습니다. 중국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한국에 왔지만, 막상 ‘어떻게’ 북한선교를 해야 할지는 몰랐어요. 신학교를 거쳐 한국교회 안에서 사역을 시작했지만, 정착 자체가 큰 도전이었습니다. 탈북 간증은 할 수 있어도, 말씀으로 성도를 세우는 일은 처음이었거든요. 그래서 초기엔 탈북민이나 외국인 노동자 사역부터 시작했습니다.

일부 교회들을 보며 안타까웠던 점은, 교회들이 재정으로 탈북민을 모으는 방식이 익숙하다는 거였어요. 그러다 보니 탈북민들의 신앙이 깊어지기보다 수동적으로 의존하는 모습으로 변해가는 걸 많이 보았어요. 저는 돈보다 말씀으로 사람을 세우는 길을 택했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았죠.


또 하나의 현실은 ‘팀워크’였습니다. 제가 북한부서를 맡아 사역을 하게 됐는데, 스탭들과의 마음을 맞추는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만큼 이 사역에 준비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각자의 신앙 성숙도나, 관점들이 달라서 매 순간 조율이 필요했어요. 그때 당시 제 에너지가 100이라면 90을 내부 조율에 쏟았던 것 같아요. 정작 탈북민 영혼에는 10도 쓰지 못할 때가 있었죠.

교회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었지만, 저는 그런 교회들이 못 하는 빈틈을 채워줄 수 있는 ‘선교회’ 사역이 맞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Q. 사역하면서 “정말 어렵다, 당황스럽다”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면요?


김주한 목사  선교회를 시작할 때 하나님께서 “집회를 세워라” 하셔서 순종 했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습니다. 인원도 적고, 후원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장소부터 식사, 강사비, 프로그램까지 모두 감당해야 했죠. 그래서 초반엔 북한선교 단체들과 연합을 시도했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한계를 봤습니다.


저는 집회에서 가장 중요한 건 메시지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강사를 세울 때마다 탈북민의 마음을 이해하고 하나님께로 이끄는 메세지를 하시는지 직접 듣고 결정했어요. 그런데 같이 협력하는 단체에서 프로그램·강사들을 자기들이 추천한 사람으로 세워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집회들은 저희가 아니여도 다른 곳이 훨씬 더 잘하고 이미 충분히 많다고 생각했거든요.

결국 우리는 ‘순수하게, 우리 힘으로라도 가자’고 결단했고, 2만 원, 3만 원씩 모인 작은 헌금들이 모여 집회가 세워졌습니다. 말 그대로 작은 물방울이 모여 강을 이룬거죠.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는 집회를 세우려다 보니 그야말로 몸부림치는 시간들이였습니다.


또 한 번의 큰 위기는, 교육 사역을 병행하기 위해 제가 교재 5권을 직접 집필하면서 생겼습니다. 강단을 다른 스탭 목사님께 맡겨 놨었는데, 그런데 그 당시 있던 모든 스탭들이 그 스탭 목사님을 따라 나가버리는 일을 겪으면서 선교회가 찢어지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말씀학교와 집회가 세워지기까지 정말 많은 진통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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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탈북민 성도들이 한국 교회 안에서 겪는 어려움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김주한 목사  핵심은 “참여의 부재”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돈이나 도움의 문제가 아니에요. 탈북민 성도들이 아직 미숙하고 한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사역에는 반드시 참여시켜야 합니다. 참여를 통해 배우고, 나중에는 스스로 독립적으로 서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본질적인 도움을 줘야 하는 거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일부 대형교회들은 “우리가 다 해줄 테니 당신들은 받기만 하라”는 태도를 보이는데, 그러면 탈북민들은 배울 기회를 잃고, 결국 신앙이 수동적으로 굳어버립니다. 인격적 교류도, 상호 배움도 일어나지 않죠.


저도 탈북 초창기에 ‘한우리 비전캠프’에 참여하면서 이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처음엔 저는 단순 참가자였지만, 좋은 기회로 이후엔 스탭으로 세워지고, 몇 년간 운영을 배우다 캠프 기획까지 맡게 됐어요. 그 과정이 있었기에 제가 지금 독립해서 집회와 캠프를 운영할 수 있는 역량을 얻게 된 거죠.

함께 배우며 세워가는 구조가 아니면 성장은 없습니다. 저는 이게 본질적 문제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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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최근 사역 현장에서 “이건 정말 하나님이 도우셨다. 하나님의 손길 아니면 이렇게 될 수 없었다”라고 느낀 순간이 있으실까요?


김주한 목사  집회들을 계획하고 세울 때, 솔직히 우리 능력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걸 알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라 하시니까 순종하고 나아가면, 항상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풍성하게 채우시는걸 느껴요. 사역의 걸음마다 그런 하나님의 손길이 따라옵니다.


아마 KAM선교회도 비슷한 고민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선교회라는 게 평상시에는 늘 사람이 적습니다.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에야 사람이 모이는거죠. 그래서 평소엔 너무 외롭습니다. 어떤 때는 정말 문을 닫고 싶어져요. “내가 여기서 월급 받는 것도 아닌데…” 하는 마음이 드는 거죠.

매주 기도회를 세우는 게 사실상 1년 내내 모든 집회와 행사를 떠받치는 뿌리라고 생각하는데, 사람은 점점 줄고, 남아 있던 사람들조차 지쳐서 떠나려 하니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실제로 작년 12월에는 선교회를 접을 생각까지 했습니다.


근데 마침 하나님이 부천의 중보기도팀을 보내주셨어요. 와서 우리와 함께 기도의 자리를 세워주고, 여름 사역까지 중보해 주는걸 보면서 “아, 하나님이 아직 이 선교회를 쓰시려 하는구나. 우리를 붙잡아 가시는구나” 깨달았습니다. 순간순간 힘들지만, 꼭 사람을 보내주셔서 사역을 이어가게 하시는 걸 경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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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끔씩, 사람들이 선교회 말고 교회를 개척하실 생각이 없냐고 묻기도 해요. 사실 교회를 하면 사람도 모이고, 어느 정도 재정 자립도 가능해지겠지만, 제가 교회를 하면, 연합하기가 어려워져요. 결국은 다른 교회 성도들을 빼앗아오는 모양이 되버린다는 거죠.

우리 사역의 목적은 교회가 하지 못하는 빈틈을 채우는 겁니다. 탈북민을 세워 각 교회로 보내는 것, 그것이 본질입니다. 그래서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연합을 해치지 않기 위해 선교회만 고집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사람을 보내주시는데 요즘 제일 기쁜 건, 드디어 찬양 인도자와 피아노 반주자를 붙여주셨다는 거예요. 10년 가까이 제가 혼자 찬양 인도, 설교, 기도까지 다 감당했는데, 제는 동역자들 덕분에 기도회가 훨씬 강력하고 예배다운 모양을 갖추게 됐습니다.

그게 요즘 제일 큰 감사이자, 분명한 하나님의 손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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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가장 인상 깊었던 사건이나, 마음에 깊이 남은 사람·사연이 있으신가요?


김주한 목사  초창기 대중 집회 사역에서 제자화와 찾아가는 양육으로 사역의 무게중심을 옮겼습니다.

기억에 남는 한 성도는 말씀학교에 참여했던 분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중보하라는 마음을 주셔서 매주 서울에서 안성까지 내려갔습니다. 함께 식사하고, 삶을 나누고, 예배드리며 3~4시간씩 기도했죠. 그 자리에서 눈물로 고백하는걸 보면서 제 사명이 살아나는 걸 보게 되었어요. 결국 그 성도는 신학교에까지 가게 되었고, 하나님이 한 사람을 세우시는 일을 직접 보게 되었습니다.


또 말씀학교는 제게 특별한 사역입니다. 오전·오후·저녁 하루 아홉 시간씩 일주일 동안 말씀만 집중합니다. 탈북민 성도들은 성경을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한 성도들이 많아요. 말씀학교를 통해 성경의 큰 그림이 구슬 꿰듯 연결되면서, “아, 우리가 작은 종교 집단에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거대한 세계 안에 있구나”라는 고백이 나올 때마다 정말 보람과 기쁨을 느낍니다.


목회와 사역이 고달프기도 하고 뒷통수 맞기도 부지기수지만, 한 영혼이 그들이 말씀으로 무장되어 주님 앞에 돌아오는 걸 보게 되는데, 역시 사람이 세워지는 과정을 볼 때가 가장 큰 보람인 것 같아요.

앞으로 북한에 들어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일꾼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큰 감사입니다.


Q. 탈북민들의 간증이나 변화된 사례들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김주한 목사  한 가정이 생각나네요. 아내는 탈북민, 남편은 조선족이였는데, 믿음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오랜시간 기도로 씨름했지만 변화가 더뎠어요. 어느 날 억지로라도 집회에 데리고 왔는데, 그 자리에서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임하며 남편이 완전히 돌아섰습니다. “이제 믿게 되었는데, 이 길을 어떻게 가야 하느냐” 물으면서 신앙고백을 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또 어떤 분은 불교 신자였는데, 여름 캠프의 다른 즐기는 프로그램만 참여하고 싶고, 저녁에 하는 메인 기도회는 참석을 안하겠다고 하는거에요. 그래도 일단 교회 땅 밟는 게 중요하니 오라고 했어요. 그런데 저녁 기도회에 맨 앞줄에 앉아 말씀을 끝까지 듣고, 그날 마음이 열렸고 지금은 아주 열심히 신앙생활 하고 계십니다.


저는 집회 때 우리가 한국에 어떻게 왔는데, 이렇게 살 수는 없다. 목숨 내걸고 온 소중한 걸음을 이 때까지 살아왔던 것 보다 훨씬 더한 고통이 있는 곳으로 옮길거냐고 강력하게 말합니다.

솔직히 교회 이용하려는 탈북민들이 정말 많아요. 그들이 철들고 정신 차릴 수 있도록 집회와 기도회 때 강력하게 말하는데 변화된 탈북민들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이 정말 그들을 사랑하셔서 여기로 인도하셨구나 하고 눈물 흘릴 수 밖에 없습니다.

a09d242e59b1a.png<자료화면>


Q. 앞으로 통일 시대가 열리면, 지금의 사역은 어떻게 쓰임 받는다고 보시나요?


김주한 목사  많은 교회들이 탈북민 양육과 통일한국을 준비하는 일에 대한 가치를 이야기 하긴 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힘과 자원이 쏟아지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통일 시대에 탈북민들이 두 문화를 경험한 ‘하나님의 전략적 자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역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독일을 방문해 동독 주민을 인터뷰했는데, 그분한테 통일 후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을 물었더니,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너무 다양해진게 당황스럽고 어려웠다고 하더라구요.

예를 들어, 통일 이전에는 마트에 우유는 무조건 한 종류밖에 없었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그걸 샀다면, 통일이 된 이후에는 우유 종류만 수십가지여서 충격을 받았다는거에요. 다양성의 충격이지요.

“새로운 것들을 경험해 낼 정보도 없고, 지식도 없다” 라는 그 말을 듣고, 통일 후의 북한 주민들도 새로운 체제와 문화의 다양성 앞에서 같은 혼란을 겪게 될 것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바로 그때 탈북민들이 두 문화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다윗의물맷돌선교회 사역의 두 축은 분명합니다.

첫째, 신앙의 무장(말씀·기도·성령)— 진리로 굳건히 서는 훈련입니다.

둘째, 사회적 통합 준비—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품는 실제 역량을 키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학교와 더불어 한 달 합숙 제자훈련인 ‘사관학교’를 준비 중입니다. 탈북민 대학생·신학생들이 교리와 복음의 뼈대를 세우고, 이단들과도 대화할 만큼 진리로 무장하도록 돕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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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기도가 필요한 일은 무엇일까요?


김주한 목사

첫 번째는 남북 통합 영성집회입니다. 

한국교회가 통일과 탈북민을 품으려면 먼저 영적 돌파가 필요합니다. 지난 8월 집회에서도 많은 분들이 “현장에 들어가 함께 산다는 건 보통 문제가 아니구나”를 깨닫고 돌아갔습니다. 이 사역이 더 알려져 한국교회가 먼저 준비되길 기도합니다.


두 번째는 사관학교(집중 제자훈련)입니다.

한 달 합숙으로 말씀·기도·성령님과의 교제 훈련을 합니다. 특히 탈북민 대학생·신학생·목회자들이 진리의 뼈대를 세우고 리더로 서도록 장학과 운영을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세 번째는 지속 가능한 팀과 재정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시는 동역자와 스태프, 그리고 장소·운영 재정이 하나님의 방식으로 채워지도록 기도해 주세요.


Q. 이 사역을 붙들어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나요?


김주한 목사  하나님이 제게 오래 붙여주신 말씀은 요한복음 21:18-19이에요.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다녔으나, 늙어서는 남이 네 팔을 벌리고 원치 않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저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아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사역 내내 배웠습니다. 때로는 원치 않는 길 같아도, 성령이 이끄시는 곳이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사역할 수 있도록 붙잡는 말씀입니다.


💡 요한복음 21:18-19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Q. 마지막으로 KAM 성도님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주한 목사  KAM선교회는 한국교회를 깨우는 등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재정립의 시간을 지나 더 밝게 타오르길 기도합니다. 예배 때 부르는 “강남에서 평양까지, 강남에서 예루살렘까지” 그 찬송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합니다.

이 시대가 점점 악해지고 빛을 읽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들을 통해 시대를 세우십니다. KAM을 통해 마지막 주자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길, 한국과 북한, 그리고 열방에서 하나님께 쓰임 받도록 축복합니다.

세상에서 떠드는 뉴스나 상황들을 볼 때에 가끔 소망이 없어 보일 때도 있지만, 이런 선교 공동체가 있는 한 대한민국과 한국교회는 여전히 소망이 있다고 믿습니다. 제 자리에서도 KAM성도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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